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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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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초 기억 3월 3일, 나의 결혼식. 그날을 위해 참으로 열심히도 달려온 것 같다. 상견례를 하고 4개월이란 시간 동안 예식장을 잡고 신혼여행 준비를 하고 결혼반지를 맞추고 웨딩촬영을 하는 등 한 번 뿐인 결혼이기에 더 야무지게 하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다. 결혼식 당일 새벽, 예식장에 도착해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으면서도 그저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것만 같았다. 신부대기실에서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나면서 웃고 사진 찍는 시간이 좋았다. 떨릴 줄 알았는데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딱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30분은 걸린 결혼식이 내 기억 속에는 고작 3초만이 남아있다. 눈을 감았다 떠보니 나는 유부녀가 되어 있었다. 주위 친구들이 결혼식을 끝내고 나면 하나같이 다시 하면 더 잘할 수 있겠다고 말하는 게 백번 이해가 되었다...
세 여자 남편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이 평범한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사진의 주인공은 시할머니 시어머니 그리고 나, 며느리다. 세 여자가 함께 채소를 다듬고 있는 게 왜 이렇게 신선한지. 그 많은 채소 중에 때마침 시금치를 다듬고 있던 3대 고부사이, 참 신기한 가족의 모습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내 남편의 어머니라는 어렵지만 귀한 관계가 모여,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어 만난 세 여자. 비슷한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될 여자들의 삶이 보여 묘한 마음이 들었다. 살다 보면 서로의 맘이 부딪히고 갈등이 생길지라도 이 사진을 보면서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가족이라는 말이 아직 입에 착 달라붙는 사이는 아니지만 앞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첫사랑 배우 차태현은 첫사랑과 13년 연애 끝에 결혼이란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첫사랑과 끝까지 잘 돼서 결혼하는 케이스는 드물다. 그래서일까. 첫사랑이란 단어는 떠오를 때마다 아련한 감정을 동반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결혼 2년차, 첫사랑 이야기가 뜬금없지만 왠지 모를 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한 때 나는 첫사랑이 마지막사랑이 되길 바래본적이 있다. 처음 만난 그 사람과 예쁘게 연애해서 결혼까지 하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사는 평범하지만 꽤 어려운 결말을 기대했었다. 내 인생에서 남자가 오직 한 명뿐이란 사실이, 첫사랑과 결혼했다는 기적 같은 이야기가 내 로맨스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바람은 깨진지 오래됐고 첫사랑의 이름과 얼굴도 가물..
변한건 나뿐 내 나이 서른 다섯, 서른이 넘어 스무살을 기억하며 곱씹는 게 어쩌면 꼰대같아 보일 지 몰라도 드문드문 생각나는 나의 20대가 그리우면서 짠하기도 한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지금의 '나'가 엄두도 못낼만큼 열정적이었고 부지런했으며 반짝반짝 빛나던 20대의 '나'. 어쩌다 30대의 '나'는 이리도 안일해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나는 사춘기, 아니 삼십오춘기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문득 학교가 가고 싶었다. 나의 20대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 뒤늦은 스승의날 핑계로 교수님도 뵐 겸 추억의 그 곳을 다녀왔다. 나와는 띠동갑은 돼 보이는 학생들이 저마다의 싱그러움을 자랑하듯 뽐내고 있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생각하는 순간 그리워졌다. 자판기커피 한 잔에도 마냥 웃음이 ..
벌써 크리스마스 서른넷의 김가현, 그야말로 단짠단짠이었던 한 해였다. 그 어떤 해보다 행복했고 그 어떤 해보다 씁쓸했던 2019년 한 해가 저물어 간다. 결혼을 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참 바쁜 시간을 보냈다. 33년 동안 일을 하면서 살림을 살아 본 적이 없던 터라 우여곡절이 많았고 시행착오를 밥 먹듯 했던 시간이었다. 엄마가 해주던 밥이, 빨래가 그렇게 그리울 수 없었다. 육아가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싶을 만큼. 어느덧 4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 드디어, 브런치가 떠올랐고 늦잠 잔 주말 오후 몇 자 적어보기로 했다. 늦잠을 자고 났더니 남편은 어디 갔는지 없다. 신혼부부의 삶도 현실이었다. 달달하기도 했고 지지고 볶기도 했던 우리의 신혼생활, 집안일 때문에 다투기도 했고 내 맘 같지 않아서 서운하기도 했다. 동갑이라..
애쓰지 않기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다. 그래서 나도 언젠가 결혼할 사람을 만나면 무언가 특별한 표시가 있을 거라 기대했다. 종소리와 함께 새가 날아간다던지,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온다던지. 그러나 나의 경우는 특별하기보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했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참 애쓰며 연애를 했던 것 같다. 서로에게 맞춰주기를 바라고 아닌 걸 알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며 내 맘 같지 않은 연락을 기다리면서 좀 더 만남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 그런 연애. 거기다 6년 전부터 나에게는 또 다른 아킬레스건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연애를 시작할 때도 남들보다 배로 고민하고 망설이고 애를 쓸 수밖에 없었다. 연애를 하다 보면 결혼까지 생각할 나이다 보니, 상대방도 상대방이지만 그의 ..
나의 장래희망 어릴 적 엄마가 ‘커서 뭐가 될래?’ 라며 가끔 묻고 했는데, 초등학교를 다니고 난 후에서야 그 질문이 ‘장래희망’을 물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커서 뭐가 될래?’라고 물어볼 때는 대통령도 되겠다, 연예인도 되겠다, 선생님도 되겠다, 그때 그 순간의 느낌과 기분대로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장래희망을 물어볼 때는 쉽게 대통령, 연예인, 선생님이란 단어를 말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왠지 장래희망이라고 물어보면, 내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두려움이 먼저 들곤 했으니까. 그렇게 일 년 이년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서른이 넘어있었고 우연히 누군가 장래희망을 물었을 땐, 이미 머리가 하얘진 뒤였다. 다 큰 성인한테 장래희망을 물어볼 일이 없다 보니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다. 가만 생각해보면, 대학 졸업한 후에도..
부부 백패커 배낭을 메다 눈이 맞은 우리 부부는 올여름도 배낭을 메고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제주도 비행기를 예약하고 배낭을 싸면서 그 어느 때보다 설레었다. 하나에서 둘이 되고 처음 맞는 여름휴가이기에 좀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텐트, 침낭, 매트, 의자, 테이블... 주섬주섬 장비들을 배낭에 넣었다. 문득 어떤 텐트를 챙겨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생각할 것도 없이(?) 함께 쓰던 텐트를 챙겼을 테지만, 이번 휴가에는 개인 텐트를 가져가고 싶었다. 생존을 위한 각자의 배낭을 짊어지고 함께 떠나는 여행, 생각만으로도 멋지게 다가왔다. 남편은 사서 고생하는 거라며 후회하지 말라고 했다. 물론 텐트를 같이 사용하면 내 배낭의 무게는 더 가벼워질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
부모되기 코로나 19와 함께 시작했던 2020년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나이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시간이 흐르는 속도도 빨라진다고 하더니 그 말이 이제야 실감 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을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그동안 나의 시간은 온통 ‘아기’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혹시나 모를 가능성을 기대하며 자연임신 시도했던 두세 달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험관 시술을 위한 준비와 과정의 시간이었다. 나에게 한 달은 보통 사람들의 한 달과 다른 시간을 의미했기에 마음이 더 조급했는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항암제 성분이 아이에게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우리 부부는 담당 주치의 허락하에 계획임신을 시도해야 했다. 약을 끊고 내 몸속에 약 성분이 남아있지 않을 시점부터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임신이 돼야만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