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되기
코로나 19와 함께 시작했던 2020년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나이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시간이 흐르는 속도도 빨라진다고 하더니 그 말이 이제야 실감 나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흘러간 시간을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그동안 나의 시간은 온통 ‘아기’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혹시나 모를 가능성을 기대하며 자연임신 시도했던 두세 달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험관 시술을 위한 준비와 과정의 시간이었다. 나에게 한 달은 보통 사람들의 한 달과 다른 시간을 의미했기에 마음이 더 조급했는지도 모른다. 혹시라도 항암제 성분이 아이에게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우리 부부는 담당 주치의 허락하에 계획임신을 시도해야 했다. 약을 끊고 내 몸속에 약 성분이 남아있지 않을 시점부터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임신이 돼야만 했다. 약을 오랫동안 끊을 수 없는 처지였기에 내 뱃속에서 커가는 열 달의 시간까지 생각하면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약을 끊은 지 4개월 만에 암 수치가 올라 다시 약을 복용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해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 보통은 인공수정을 진행하기도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높은 시험관 시술로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하고 싶었다. 시험관 시술도 한 번 만에 되는 사람도 있고 몇 번이고 해도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나는 전자에 속하고 싶었다. 매일 같이 시험관 시술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며 나도 엄마가 되기 위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나팔관 조영술을 통한 난임 검사를 시작으로 과배란 주사, 난자 채취, 배아 이식 단계로 이어지는 시험관 시술. 대부분 단계 단계마다 아프고 힘들었다는 후기를 많이 본 터라 더 맘을 단단히 먹어서일까. 다행히 나에게 시험관 시술의 과정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11개의 난자가 채취되었고 그중에 2개를 신선 이식 그리고 3개를 냉동 보관하기로 했다.
나 또한 원하면 언제든지 임신이 되는 줄 알고 살았다. 참 멍청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너무나도 잘 안다. 살면서 내가 시험관 시술을 하게 될지 꿈에도 몰랐지만 배아를 이식하는 당일, 기분이 참 좋았던 걸로 기억한다. 참 많은 부부들이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 행복은 누군가에게는 조금 빠르게, 누군가에게는 천천히 찾아온다는 것도 알았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우니 오만가지의 생각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그때 의사 선생님이 모니터를 통해 배아 2개를 보여줬다. 작고 작은 우리 부부의 배아, 현미경으로 아주 많이 확대를 해야 사진 속 모습처럼 보이는 저 두 개의 배아가 내 몸속에 들어간다고 하니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배아 이식은 아주 짧은 시간에 끝이 났다. 회복실에서 1시간가량 누워있은 후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편을 만났다. 배아 사진을 보여주자 쌍둥이 되는 거 아니냐며 설레발을 치는 남편을 보고서야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배아 이식부터 피검사를 할 때까지의 시간은 정말 몸보다 마음이 힘든 시기다. 혹시나 나의 행동 하나로 잘못될까 싶어 조마조마한 데다가 괜히 뱃속에 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숨조차 마음대로 쉴 수 없었다. 한우, 추어탕, 포도즙, 견과류, 키위, 치즈 등 시험관 시술에 좋다는 음식을 열심히도 챙겨 먹었다. 좋은 생각을 했고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9일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나는 피검사를 진행했고 결과는 실패였다. 사실 피검사하기 전날 대충 느낌은 왔었다. 임신 테스트기에 보이지 않는 줄을 몇 번이고 확인하면서 남편을 붙들고 한참을 울어서인지 의사 선생님의 말에 크게 실망스럽지 않았다. 그보다 더 슬펐던 건 1번의 실패를 뒤로 한 채 또 잠시 멈춰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내 몸의 암 수치는 또 오르기 시작했고 더 이상 약 먹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한 번 더 시도해보면 안 되냐는 나의 물음에 의사 선생님은 단호히 말했다. 힘들게 생긴 아이가 잘못될 수도 있다고.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엄마 없는 아이가 될 수 있다고. 지금 중요한 건 아이가 아니라 나의 건강이라고. 우선순위를 헷갈려서는 안 된다고. 야속한 의사 선생님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참았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엄마가 되는 것이 나에게만 유독 어려운 것 같아서, 좀 많이 서글프고 속상했다. 부모가 되기에는 아직 내가 준비가 덜 된 모양이다. 다시 항암제를 먹기 시작하면서 나의 일상은 평범하게 흘러갔다. 속상했던 마음도 점차 옅어졌고 나를 자책하던 시간도 희미해져 갔다. 다만, 빨리 건강해져서 내년에는 부모가 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욕심만 온전히 남아 있을 뿐. 냉동되어 있는 나의 배아를 어서 빨리 만나고 싶다.